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은행 업무를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컴퓨터로 인터넷 뱅킹 하는 것마저 구석기시대 사람이나 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인터넷 시대라고는 하지만 미국에서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은행 사이트에 컴퓨터로 접속해서 은행 업무를 보려면 여러 쉽지 않은 일을 겪는다. 일단 너무 느리다. 로그인하기 전에 설치하는 프로그램도 많고, 그것을 다운로드하는 것도, 페이지 간 이동도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간단한 업무를 보려 해도 느려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한국의 은행 업무를 몇 달에 한 번 보니 가끔 비밀번호가 헷갈릴 때도 있는데, 잘못해서 몇 차례 실수하면 계정이 막혀서 은행 지점을 방문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OTP 기기가 배터리가 다 되어버릴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몇 개의 OTP 기기가 있더라도 대체로 배터리 수명이 2~3년으로 비슷해서 돌려막기에도 한계가 있다.

몇 년 전에는 공인인증서 갱신 시간을 놓쳤다. 보통 인증서 등록을 다시 하면 되는데, 이 과정에 OTP가 필요하다. 그런데 하필 해당 은행에 등록한 OTP 배터리가 다 방전이 됐다. 다른 은행의 OTP는 배터리가 남아 있었지만, 그 OTP를 해당 은행에 등록하려면 그 해당 은행에 로그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그러려면 그 은행에 등록된 유효한 OTP가 있어야 하는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데드락(deadlock) 상황이다. 해외에서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직접 한국에 있는 은행에 방문하거나, 뉴욕에 있는 영사관에 가서 위임장을 공증받고 그것을 한국에 보내 가족이 대리인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최근에는 지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만료일보다 며칠 앞서서 공인인증서 갱신을 시도했다. 만료가 되지 않은 인증서는 갱신하기 전에 폐지하고 새로 등록하게 된다. 문제는 인증서를 새로 등록(혹은 갱신)하려면 OTP를 넣어야 하는데, OTP 값을 넣었더니 '보정 거래가 필요합니다'라는 오류 메시지를 보여준다. OTP 기기와 은행 시계의 오차로 인해 입력한 번호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보정 거래를 바로잡으려면 로그인을 해야 한다. 이미 공인인증서가 폐지되어서 로그인할 수 없었다. ID/PW 로그인이라도 해야 하는데, 거의 사용한 적이 없으니 ID가 있는지, PW가 뭔지 기억나지 않아서, 그것들을 '찾기'하다가 ID 접근이 금지되기까지 했다. 난감하다.

이런저런 이중 삼중 안전장치가 사이트 사용을 너무 불편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이와는 약간 다른 방향의 이야기지만, 한국 사이트는 휴대폰 번호가 없으면 가입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네이버는 1년마다 휴대폰으로 성인 인증을 하라고 하는데 그것을 안 하면 영화 페이지에서 19세 이상 관람가 영화는 내용 설명을 아예 볼 수 없다. 그에 비해 그냥 메일 주소 하나로 모두 가입할 수 있는 미국 사이트는 참 편하다. 한국에는 뭐 그렇게도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가 싶다.

조금 극단적인 비유겠지만 한국에서는 1번의 불행을 막기 위해, 99번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미국에서는 99번의 편함을 위해 1번의 불행은 각오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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